의료 영역으로 들어오는 문학

 htm_2012112523354330103011.jpg글쓰기를 통해 의식·무의식 속의 갈등과 상처가 표출된다. 심리·정신적으로 안정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김수정 기자

 
“빨강·노랑·파랑… 일곱 색깔 우산이 모두 팔리고, 벽에 달랑 혼자 남은 것은 깜장우산뿐이었습니다.” 문학치료사 고희선씨가 책을 낭독하다 멈추고 “이 다음에는 어떠한 내용이 이어질까요. 자신만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시겠어요?”라고 환자들에게 말했다. 잠시 후, 30대 여성 환자가 이야기를 꺼냈다.

“혼자 남은 깜장우산이 마치 제 얘기 같았어요. 남편 때문에 외로웠던 시간이 떠올랐어요. 전 깜장우산의 가치를 알아본 멋진 아이가 우산을 사가는 얘기를 써봤어요. 깜장우산도 더 이상 외롭지 않고 행복해진 거죠.” 그녀는 자신만의 깜장우산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진] 지난 16일 명지병원 예술치유센터에서 진행한 문학치료 모습이다. 정신질환자를 비롯해 암환자나 어린이 환자 등 심리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 문학치료를 하고 있었다.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일호 교수는 “문학치료는 글쓰기를 통해 무의식 속에 있는 내면의 갈등을 꺼내는 과정”이라며 “갈등이 표출되면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정신적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문학치료는 예술이 아닌 힐링

예술 장르에 머무르던 문학이 의료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문학치료를 통해서다. 문학 작품을 읽고 내면에 떠오르는 감정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상처와 불안정한 심리가 치유된다. 이를 문학치료 내지는 글쓰기치료·시치료라고 부른다. 독서치료와 유사하지만, 문학치료는 읽기보다 글쓰기에 더욱 중점을 둔다.
 
문학치료는 주로 우울증·심리적 외상 등 크고 가벼운 정신적 장애를 지닌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박일호 교수는 “문학치료는 특히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게 서투른 사람에게 필요하다”며 “미처 의식하지 못했거나, 창피하고 어색해 표출하지 못했던 감정이 글쓰기를 통해 드러난다”고 말했다.

문학치료는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생소하다. 하지만 미국에선 200여 년 전부터 정신질환 치료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했다. 미국 공인 문학치료사 나사렛대 이봉희(영문학) 교수는 “미국에서는 주로 의사가 문학치료를 연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문학 전공자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보다 주로 도서관·문화센터와 같은 곳에서 문학치료가 행해지고 있는 이유다.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상처 명확해져

문학치료는 크게 ‘읽기’와 ‘쓰기’ 행위로 이뤄진다. 읽기 대상인 문학작품은 환자의 자아성찰을 위한 ‘매개체’다. 시·소설·수필 등 다양한 문학장르가 활용된다. 문학치료사는 먼저 대상자를 파악하고, 그의 상황에 맞는 작품을 골라준다.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울시 북부노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유라 과장은 “책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마주하면 감정이 이입돼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며 “자신의 질병을 다룬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안정된다는 건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문학치료에서 핵심은 글쓰기다. 작품을 통해 느낀 감정을 글로 표현한다. 글을 쓰다 보면 환자의 의식·무의식 속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겉으로 드러난다. 이봉희 교수는 “자신이 글을 써놓고도 ‘내가 왜 이런 구절을 썼나’ 놀라는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이는 글쓰기를 통한 ‘감정의 객관화’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감정은 말로 내뱉으면 상당 부분이 의미 없이 흩어지지만 글로 표현하면 더욱 명확해진다”면서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감정이 정리되는 효과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부정적 에너지 표출되면 면역력 향상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 박사는 글쓰기 효과를 연구했다. 일정 기간 한 집단은 일반적인 주제로, 다른 한 집단은 폭력·실연·자살 시도 등 삶에서 가장 끔찍했던 경험을 글로 쓰도록 했다. 이후 두 집단의 건강 상태를 관찰한 결과, 끔찍한 경험을 글로 쓴 집단이 일반 집단에 비해 병원을 찾는 횟수가 43%가량 적었다. 마음은 물론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진 것이다.

이는 글쓰기의 배출 효과다. 이유라 과장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자 속병이 나은 동화 속 주인공처럼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가 글쓰기 수단을 통해 외부에 표출돼 심신 건강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이는 ‘신체화장애’와도 밀접하다. 신체화장애란 억압된 심리적 에너지가 신체에 영향을 미쳐 위장장애·두통·복통 등 다양한 신체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신체화장애는 자연스레 치유된다. 이유라 과장은 “글쓰기가 직접적으로 특정 질환을 치료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다만 마음이 안정되면 신진대사가 원활해져 면역력이 향상되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글쓰기는 뇌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연합·조절·조정의 기능을 하는 뇌의 전두엽을 활성화한다. 전두엽 기능이 떨어지면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정서장애가 나타난다. 글쓰기는 이를 예방한다. 치매환자의 재활에도 도움이 된다.

여의도성모병원 재활의학과 원선재 교수는 “치매환자가 꾸준히 글쓰기를 실천하면 대뇌 전체가 활성화돼 인지기능이 향상된다”고 말했다. 이는 치매뿐 아니라 뇌졸중 등 각종 뇌 관련 질환자에게 마찬가지 효과를 나타낸다.

오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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